중마고등학교 도서관은 지난 5월부터 실패연구소 '소구연패실:404'를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은 실패를 성장과 배움의 과정으로 다시 읽는 활동을 이어 왔다. 이 사업은 「1318 책벌레들의 도서관 점령기」 사업의 하나로 꾸려졌다.
연구소 이름 '소구연패실'은 '실패연구소'를 거꾸로 읽은 것이다. '404'는 웹페이지를 찾지 못할 때 뜨는 오류 코드다. 오류를 새로운 생각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뜻을 담았다.
실패연구소는 5월 29일 도서관 '책뜨락'에서 문을 열었다. 개관 날 학생들은 월드카페 토론으로 연구소 이름과 주요 활동을 직접 정했다. 연구원 26명은 기획팀·홍보팀·기록팀으로 나눠 기획부터 운영까지 전 과정을 이끌고 있다.
7월부터 8월 초까지는 안혜정 외 지음 『실패를 빼앗는 사회』를 매일 15쪽씩 함께 읽었다. 카이스트 실패연구소가 한국 사회의 실패를 탐구한 보고서다. 결과만 요구하는 사회가 어떻게 실패할 기회를 빼앗는지 다룬 책이다.
학생들은 성적표, 선거, 완벽주의, 미루기 습관처럼 자신을 흔든 경험을 '실패 에세이'로 썼다. '5표 차 당선과 2표 차 낙선 사이', '밀려 쓴 OMR 카드와 반토막 난 성적표' 같은 제목이 그것이다.
8월에는 비경쟁 독서토론이 열렸다. 학생들은 "내 인생의 어떤 순간에 '오류 코드 404'를 붙여 삭제하고 싶은가" 같은 연결 질문에 답하고, 직접 만든 확장 질문을 더해 대화를 이어 갔다. 정이현 작가의 소설 『노 피플 존』 중 「실패담 크루」도 함께 읽었다. 승패를 가리지 않는 대화여서 학생들은 서로의 실패를 평가 없이 들었다.
9월 4일에는 안혜정 작가를 초청해 '실패, 그 너머 세상' 북콘서트를 열었다. 2학년 이정한 학생이 연구소 활동을 기록한 '소구연패실' 발표로 문을 열었다. 작가 강연과 질의응답, 사인회, 포토타임이 이어졌다.
학생들은 그림 도구 '투닉'을 활용해 실패 에세이를 4컷 툰으로 옮겨 그렸다. 트레드밀 위에서 제자리를 달리는 주인공이 땅속에서 뿌리를 내리는 씨앗을 발견하는 '보이지 않는 나의 계절을 믿으며' 같은 작품이 나왔다.
활동은 10월 16일부터 17일까지 충남 논산 상상마당에서 열린 '짓다:' 캠프로 이어졌다. 희망한 1·2학년 학생 20명과 교사 3명이 함께했다. 에세이 나눔에서는 친구의 실패를 평가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격려하기로 약속했다. 학생들은 모닥불과 구운 고구마 옆에서 교실에서는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한 편씩 꺼냈다.
학생들의 실패 에세이는 12월 에세이집 『실패했다는 착각』(가제)으로 출판될 예정이다. 중마고와 함께 논산여고, 순천강남여고 학생들의 에세이와 4컷 툰이 실린다.
황왕용 사서교사는 "아이들이 실패를 억지로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꺼내 보일 때, 서로에게 숨통이 트이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캠프에 참가한 2학년 김혜빈 학생은 "교실에서는 실패를 들키면 안 되는 것처럼 숨겨 왔는데, 모닥불 앞에서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실패를 안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