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2년에 인공지능 문제은행을 만들었다. 정확히는 고등학생 열일곱 명이 만들었고 나는 곁에서 거들었다.
이름은 에듀뱅크21이었다. 학생이 문제를 틀리면 컴퓨터가 오답률을 셈해 다음 문제의 난이도를 바꿨다. 난이도는 1단계부터 10단계까지 두었다. 어느 단원이 약한지도 짚어 줬다. 레벨이 오르면 아바타가 달라졌다. 요즘 말로 옮기면 적응형 학습이고 게이미피케이션이다.
그 아이들은 충북전산기계고 2·3학년이었다. 실업계 고등학교다. 지원자는 줄고 취업문은 좁아지던 때였다. 우리는 회사를 차렸다. 고등학생이 세운 벤처회사는 그때 전국에 없었다. 중소기업청이 개발비 팔백만 원을 댔고, 그해 가을 벤처창업대전에서 상을 받았다.
자랑하려고 꺼낸 이야기가 아니다. 그 반대다.
스물네 해가 지났다. 2025년 3월 AI 디지털교과서가 교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해 8월 국회는 초중등교육법을 고쳐 그것을 '교과서'가 아니라 '교육자료'로 내렸다. 쓸지 말지는 학교가 정하게 됐다. 들어온 지 1년도 안 돼 벌어진 일이다.
나는 이 결말이 놀랍지 않았다.
그때 나는 좋은 프로그램만 만들면 교실이 바뀔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 프로그램을 열어 볼 교사에게 시간이 없었다.
교사의 하루를 들여다보면 안다. 수업이 전부가 아니다. 공문을 읽고, 통계를 올리고, 가정통신문을 돌리고, 대장을 맞춘다. 좋은 도구가 하나 생기는 일은 그에게 익힐 것이 하나 느는 일이다. 도구를 주기 전에 시간을 주지 않으면 도구는 짐이 된다.
2016년 나는 충청북도교육청에서 일했다. 학교마다 돈을 내고 쓰던 메신저를 걷어내고 우리 손으로 만들었다. 해마다 오억 원이 굳었다. 사람들은 그 돈을 먼저 말한다. 나는 다른 것을 먼저 말하고 싶다.
사이버학급 지도교사 780명에게 수당을 챙겨 주는 일이 있었다. 예전에는 전화를 780번 걸었고 몇 달이 걸렸다. 바꾼 뒤에는 하루면 끝났다. 그 몇 달이 교사에게 돌아갔다.
교육에서 기술의 값은 거기서 갈린다. 기능이 몇 개 붙었느냐가 아니다. 교사의 손에서 무엇을 덜어 냈느냐다. 덜어 내지 못하는 기술은 아무리 똑똑해도 교실 문턱을 넘지 못한다. AI 교과서가 1년 만에 자료로 내려앉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나는 본다.
전남을 생각하면 걱정이 하나 더 있다.
전남에는 섬이 많고 작은 학교가 많다. 한 학년이 열 명이 안 되는 학교가 드물지 않다. 도시 사람들은 학생이 적으면 저절로 맞춤 교육이 될 거라고 여긴다. 현장은 다르다. 교사 한 사람이 여러 과목을 맡는다. 견줄 또래도 적고 물어볼 학원도 없다.
맞춤 학습이 가장 급한 곳은 학원이 즐비한 도시가 아니다. 학원이 하나도 없는 섬이다. 이제 학교가 스스로 고르게 됐으니 도가 할 일은 분명하다. 쓸 학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쓸 수 있는 형편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망이 느린 학교의 망부터 고치고, 담임이 혼자 다 떠안는 학교에 사람을 먼저 보내야 한다.
나는 삼십 년을 특성화고에서 가르쳤다. 그사이 주부와 어르신 삼천 명에게 컴퓨터를 가르쳤고, 보호관찰을 받던 젊은이 백스무 명이 자격증을 따는 것을 거들었다. 교장으로 있던 학교에는 특수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전공과를 두었다. 열여섯 명이 모두 일터로 나갔다.
그 일들이 가르쳐 준 것은 하나다. 기술은 앞선 사람을 더 앞서게 하기는 쉽고, 뒤처진 사람을 끌어올리기는 어렵다. 어려운 쪽을 해내야 그것이 교육이다.
스물네 해 전 그 프로그램은 이제 내 손에 없다. 그러나 그것을 만든 아이들은 마흔을 넘겼다. 어디선가 저마다의 기술로 살고 있을 것이다. 프로그램보다 사람이 오래 남았다.
다음 교과서도 그럴 것이다.
고광욱 | 전 충북에너지고등학교 교장. 특성화고에서 30년 가르쳤다. 2003년 행정자치부 신지식인. 이 글은 개인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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